미국 방송스탭 파업은 한국 OTT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리가 쇼파에 누워 편안하게 시청하는 방송 드라마, 영화들의 제작 이면에는 수 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다.
카메라, 의상 제작, 메이크업 아티스트, 특수 효과 분장, 헤어 스타일리스트, 전기 기사, 대문 감독관 등.. 우리는 이들을 ‘스탭’ 또는 ‘크루(crew)’ 라고 부른다.
이번주 월요일 (10/4) 미국에서 방송 기술 스탭들의 노동조합인 IASTA 는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98%의 압도적 표차로 파업을 결의했다.
1893년 미국의 극장 무대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방송 영상제작 분야 스태프 연합 (International Alliance of Theatrical Stage Employees, 이하 IATSE) 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15만명의 전문 기술 스탭들을 대표하는 노동 조합이다. 이들은 방송 제작사 연합인 AMPTP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과 방송 제작 노동 조건 개선을 걸고 협상 중이다. 이번주 월요일 (10/4)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98%의 압도적 표차로 파업을 결의했다.
우선 협상 파트너로 디즈니와 넷플릭스 등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AMPTP(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와 협상을 다시 재개하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파업을 감행할 권한을 부여했다.
파업이 진행되면 편집자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카메라 기술 등 6만여명의 스탭들이 제작 현장에서 철수하여 TV와 영화 프로젝트가 중단된다. 방송 스탭들의 파업은 128년 만에 처음이다.
팬데믹 이후 OTT 제작 물량 증가와 노동 강도
방송 제작 종사자들의 파업 결의는 팬데믹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제작 물량으로 인한 노동 강도 증가가 원인이다. 제작진들은 팬데믹 업무 환경의 엄격한 룰을 지켜야 하고 마스크를 항상 착용 하는등 열악한 노동 환경을 호소하였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근무 시간 축소, 최저임금 개선, 근무일과 주말 사이의 합리적 휴식 등 노동환경 개선을 내걸었다. 스트리머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증가하면서 근무일의 충분한 휴식 시간이 보장등을 요구하고 있다.
넷플릭스등 대형 스트리머들은 팬데믹 이후 오리지널 제작 재개 이후 유명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급했지만 스탭들의 임금 조건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의 안전 위험과 스탭들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기본적 욕구가 여전히 20시간 넘는 노동강도로 훼손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6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와 "영광을 위하여"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전설적인 촬영감독 하스켈 웩슬러(Haskell Wexler)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Who Needs Sleep” 에서 다룬 영화 산업이 표준 근무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인간의 기본권리가 어떻게 훼손되는지에 대한 경고가 여전히 지금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호소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하루 18시간 동안 세트장에서 근무한 후 가족에게 돌아가다가 운전석에서 잠이 든 보조 카메라맨의 비극적인 죽음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시기를 권장한다)
거대화된 OTT 에 대한 댓가 요구
그리고 마지막 주장이 매우 흥미롭다. 일부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의 <낮은 임금 지불 조건의 개선>이 그것이다. 현재 IATSE와 AMPTP 사이에 체결된 협악에 의하면 2천만명 미만의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더 낮은 임금 지불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있다.
이러한 협약은 2009년 당시 소위 뉴미디어 에 대한 제작 조건을 논의하며 정리된 것인데 현 시점 애플TV Plus 나 피콕 등 하위권 스트리밍 회사들이 호혜적 조건 범위안에 포함된다. 애플이 파업을 앞두고 자신들의 북미 지역 가입자가 2천만명이 채 되지 않음을 굴육적으로 고백한 이유도 이 조건을 고수하기 위해서 였다.
OTT가 방송 제작 생태계에 핵심 사업자로 부상한지 오래이고 애플이나 아마존 등은 그 후방에 빅테크 기업으로서의 어마무시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IATSE는 2009년에 체결된 협약을 깨려하는 것이다. 2009년 당시 OTT의 성장을 그만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넷플릭스가 44개의 에미상을 수상 했고, 아마존 프라임 2억명, 디즈니플러스 1억 2천명 가입자를 기록했다. 애플은 2021년 에미상에서 TED LASSO가 최우수 코미디 부문을 수상하였다.
IATSE는 “뉴미디어는 이제 일반 미디어가 되었고 다른 스튜디오와 동일한 혜택과 비용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파업 투표를 결정하기 전 주장의 상징성을 위해 넷플릭스등의 구독을 취소하는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헐리우드 스타들의 지지
헐리우드의 스타들은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들의 창의적 재능이 없다면 지금의 TV시리즈들은 없을 것 이라며 IATSE의 파업을 지지하고 그들의 팬들을 향해 온라인 청원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Jane Fonda와 Lily Tomlin은 파업을 지지하는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파업이 감행되면 스트리밍 회사들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팬데믹 장기화로 인해 오리지널 제작이 이미 지연되었고 이제 본격화될 시점 이었기 때문에 넷플릭스등 상위 스트리머들의 사업 손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파업이 실제 일어날지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 협상 타결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미국 방송 제작 파업의 나비효과 : 한국이 생산기지의 대안
파업의 결과와 상관없이 미국의 OTT 사업자들에게 제작 비용이 상승될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방송 창작 노동자들의 권리가 커질수록 스트리머에 돌아갈 비용 상승은 자연스럽게 타국의 제작 생산기지로 눈을 돌리게 할것이다. OEM, ODM 방식으로 해외로 생산 기지를 이동하는 제조업 산업 경로와 같다.
미국에서 1위를 할만큼 검증 받은 한국의 제작 생태계는 우선순위 목록임은 당연하다. 오징어게임 이후 확실하게 입증된 한국의 제작 능력과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제작 생산 단가는 글로벌 OTT 들에게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한국의 제작 산업은 이러한 글로벌 환경을 적극 활용하여 '산업의 선진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 풀어야할 숙제는 없는 것인지 그리고 미국의 방송 스탭의 노동 강도와 비교하여 한국의 제작 환경은 '안녕' 한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저작권 독점의 점진적 해결
넷플릭스는 최근 오징어 게임 성공 이후 “한국에 5년 동안 7,700억원을 투자해 콘텐츠 제작, 배급, 타 콘텐츠 산업, 이종산업등에 약 5조 6천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1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추정” 했다.
넷플릭스의 메기 효과는 제작 산업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KBS의 유건식소장이 PD저널에서 지적한 ‘저작권 독점 관행’은 하청기지화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또다른 그늘이다.
국내 방송사들보다 높은 제작비를 투입하지만 그만큼 권리를 광범위하게 확보함으로써 저작권 독점 논쟁을 불렀다.
업계의 소식들에 의하면 국내 제작사들도 저작권의 다양한 활용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 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즈니나 애플TV등 글로벌 OTT들이 국내 제작사들을 만나면서 저작권의 이양 범위를 넓히는 조건들도 나오고 있다. 두번째 메기가 불러올 긍정 효과도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 제작 스탭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고민할 계기
글로벌 OTT들을 활용하여 콘텐츠 제작 산업이 선진화 되면 방송 제작진(스탭, 크루) 들의 노동 환경은 개선 되는 것일까? 2019년의 기사이지만 “열정페이로 세운 드라마 왕국” 이라느 제목이 아직도 유효한 상태가 아닐까?
이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보니 한국 방송 제작 스탭들의 노동 처우에 관한 분석이나 고민들이 매우 열악함을 알 수 있다. 표준 계약서가 몇년전에 만들어 졌지만 아직도 관행적으로 이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글로벌 OTT와 거래하는 제작사들의 제작 스텝들은 다른 처우를 받고 있다는 것도 찾지 못했다.
플랫폼노동의 후진성은 곧 우리의 문제
기존의 방송 미디어 제작 환경은 실시간 방영권 이후 VOD 판매, 해외 수출 등 수익 다각화에 따른 권리 관계자들의 이해 관계가 분산 되어 있다. 그리고 플랫폼과 제작사는 서로 위험도를 적정하게 나누어 가지지만 주로 제작사에게 돌아갈 몫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OTT 환경은 플랫폼으로 이해관계가 종속됨으로써 초기 제작비에 모든 것들을 포함시키는 계약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 넷플릭스 처럼 2억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플랫폼은 자신들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제작 콘텐츠의 인기도를 예측함으로써 위험도(콘텐츠가 망할 위험) 를 낮춘다. 그만큼 안정적 제작비가 제작사에게 돌아간다. 그로인해 창작 생태계 전체가 활력을 나눌 수 있을때 비로소 제작산업은 선진화될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놔둔다고 그렇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도 결국 '플랫폼' 이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제작 산업의 하방을 지탱하는 제작 스탭들의 업무환경은 소위 '플랫폼 노동'의 후진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콘텐츠 창작력이 전세계로 뻗어갈 수 있다는 전국민적 '국뽕' 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진정한 '국뽕'이 되기위해선 '보는 사람의 즐거움' 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사람들의 안전함과 즐거움'도 보장되어야 한다. 미국의 파업 임박 사태를 바라보며 곧 한국으로 넘어올 문제임을 미리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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