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넷플릭스 법' 한국은 어떻게?
얼마전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58%의 찬성으로 소위 ‘넷플릭스 법 (Lex Netflix)’을 통과시켰습니다. 넷플릭스가 스위스에서 벌어들인 매출의 4%를 스위스 영화 제작에 투자하고, 넷플릭스에 제공되는 콘텐츠의 30%를 유럽 콘텐츠로 구성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재투자 의무화’ 라는 관점에서 촛점을 맞추어 보도했는데요, 이런 의문이 들죠.
‘그럼 한국에도 이런 법이 있어야 하는건 아닐까?'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보겠습니다.
국내 언론이 다루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요,
스위스 : TV방송국과 OTT의 동일 규칙 적용
스위스 정부는 2007년 스위스 국내 TV 방송사들의 매출 4%를 영화 제작에 투자해야 한다는 영화법을 통과 시켰습니다. 각국의 사정이 있겠지만 스위스에는 방송국이 번 돈으로 영화 산업을 지원하는 ‘법’이 세워진 것인데요, ‘넷플릭스 법’은 사실 국내 사업자와 동일한 규칙을 적용한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주도로 EU가 국내 및 글로벌의 SVOD 서비스들을 모두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지침(Audiovisual Media Services Directive)’ 안에 분류하여 규제 틀을 만들었는데요, OTT 기업들을 확장된 방송 개념에 포함시켰습니다. 스위스는 EU 멤버는 아니지만 유사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EU : 글로벌 OTT의 재투자 의무화
AVMDS 지침 하에 프랑스는 OTT 사업자들이 수익의 25%를 프랑즈 콘텐츠 제작에 투자해야 하고, 이탈리아 20%, 스페인, 덴마크 5% 등 유사 규제가 각국에서 통과되거나 제정 중입니다. 폴란드는 수익의 1.5%를 영화 협회에 기부해야 합니다.
스위스는 4%의 넷플릭스 머니가 펀드를 통해 투자되는 반면, 폴란드는 협회로 현금이 직행하는 방식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넷플릭스로 인해 자국의 미디어 제작 산업이 고사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별 토종 OTT들이 글로벌 OTT들에 비해 약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자국의 문화 콘텐츠를 자국 플랫폼 만으로 부양시킬 수 없다는 문제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글로벌 OTT가 80% 이상을 차지한 시장
아래표를 보면 2020년 기준 전체 SVOD 구독자 중 넷플릭스 등 4개의 글로벌 OTT 가 84% 비중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유럽의 이러한 OTT 규제 움직임은 자칫 미국과의 무역 분쟁으로 확전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국의 미디어 산업 전체의 동일한 규제 원칙을 수립하는 모양새를 갖추어 이를 피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제작 산업 보호 에 집중한 규제
프랑스의 경우 영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극장 상영 이후 무려 3년 뒤에야 SVOD 서비스에 공급할 수 있는 ‘영화 윈도우 규제’가 있습니다. 프랑스 당국은 위 윈도우를 15개월로 단축 시켜 주면서 넷플릭스의 사업 기반을 넓혀주었습니다. 넷플릭스가 10편의 프랑스 독립 영화에 4천만 유로, 소규모 영화에 4백만 유로 투자를 약속한 댓가입니다.
유럽의 각국은 글로벌 OTT가 지배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전제 하에 자국의 콘텐츠 제작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방향으로 규제의 철학을 잡고 있습니다.
한국 : 기존 미디어와 다른 분류 체계로 가닥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규제 틀의 철학이 모호합니다.
2022년 초 정부는 OTT를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으로 분류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근 방송이 포함된 포괄적인 ‘디지털 미디어’ 분류 방안이 KISDI로 부터 제시되었습니다.
OTT와 기존 미디어의 통합 체계 필요
방송과 OTT가 동일 규제 틀에 속하느냐의 여부는 국내에선 매우 논쟁 꺼리 입니다. 업계와 학계, 정부 기관의 의견들이 모두 다릅니다.
(필자의 생각은 위의 KISDI 보고서 주장 처럼, ‘규율체계를 통합 체계화’ 하는 것은 필요 하다는 의견입니다.)
OTT가 향후 미디어 산업에 미칠 영향, 그리고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단계별 퇴조, 이로인한 콘텐츠 제작 산업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만 유럽의 규제 방향에 대한 한국적 시사점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jeremy79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