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광폭한 포식자일까?
넷플릭스 그리고 올해 한국에 상륙할 디즈니 플러스 등 글로벌 OTT가 국내 구독자의 70% 이상을 “싹쓸이”하는 것에 대해 어떤 우려가 있는 것일까? 자본의 국적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경제 관점에서 보면 이용자들은 좋은 서비스만 누리면 된다. 또한, 오히려 한국 콘텐츠들의 스토리 확장을 도와 글로벌로 진출하는 지원군이라는 일부의 시각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 산업 측면에서 보면 고민해야 할 과제는 무척 많아 보인다.
콘텐츠 제작 생태계에 미친 영향과 극복방안
‘하청기지화 논쟁’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2021년 한 해에만 5,500억 원을 한국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넷플릭스가 구독자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익의 크기와 맞먹는다. 이 수치로만 보면 넷플릭스는 글로벌로 활용할 목적으로 한국을 콘텐츠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한국의 콘텐츠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래 표는 작년에 개최된 ‘영상미디어포럼’에 발표된 자료의 일부다. 국내 105개 영상 제작 및 유통 회사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인식 조사 결과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콘텐츠 제작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하는 시각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글로벌 OTT에 대한 종속성으로 인해 콘텐츠 산업이 쇠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아울러 대형 제작사 또는 미디어 플랫폼과의 양극화 이슈가 보다 크게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판단은 넷플릭스와 제작 프로젝트 또는 유통 판매를 해 본 제작사들과 그렇지 않은 회사들과의 인식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이를 감안해 판단할 필요는 있다.
콘텐츠 제작 산업의 선진화에 기여
산업적으로 보면 넷플릭스로 인해 콘텐츠 제작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충분한 자금을 수혈하며 기존 외주제작사와 방송사간에만 존재했던 제작 시장의 외형을 넓혔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성과와 무관하게 제작비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콘텐츠 권리 전체를 사들이는 방식의 계약인데, 제작자들은 넷플릭스에 콘텐츠 권리를 넘기는 대신 광고주의 개입 등 추가적 고민 없이 제작에만 몰입할 수 있다. 기존에는 통상 제작비의 70% 정도에 해당하는 방영권료만 보장 받다 보니, 나머지 수익은 제작사가 직접 PPL 등 추가 광고주 영입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유건식 소장이 전파진흥원의 전문가 리포트(2020년 12월 발행)를 통해 넷플릭스와 현장에서 업무를 했던 제작자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을 보자.
“넷플릭스 드라마는 소위 클리프행어 (궁금증을 유발하는 엔딩)가 필수적이지 않다. 또 중간광고 등을 고려해 끊어지는 구성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 회차별 시간제한도 특별히 없다. 넷플릭스가 요구하는 화질은 4K 보다 선명한 6K, 8K 수준이다. 편집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인력을 더 투입하여 완성도를 높일 것을 주문한다. 50년 뒤에도 업 컨버팅(더 높은 해상도로 업그레이드하는 기술 작업)이 가능하도록 최적의 품질을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스토리텔링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 작가진의 창의성을 철저히 존중하고 제작 도중에 투자자에 의해 내용이 변경되는 등 과거 관례가 없어졌다. 표현의 자유도 OTT 특성상 모두가 지켜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게 되는 등 창의력을 보장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스토리 선택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방송 드라마와 심의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활용해 콘텐츠의 표현 수위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객의 내밀한 문화 취향을 다양하게 담아낼 수 있다.
넷플릭스와 계약된 작품들은 190개국의 넷플릭스 구독자들에게 제공된다는 점은 일거에 글로벌 확산이 가능하다는 매력 요소로 작용한다.
제작사 낙수효과 기대 수준은 아직…
반면, 넷플릭스는 국내 제작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선 제작비가 급상승되어 기준치가 높아졌다. 국내 방송사가 지급하는 제작비보다 높은 이윤을 보장하는 넷플릭스로 제안서가 쏠리는 현상을 막기가 어려워졌다. 특히 대형 회사들로 쏠림이 가속화되어 제작사 전반으로 ‘낙수효과’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지난 3월 17일 클럽하우스에서 <넷플릭스 1천만 시대>를 주제로 열린 토론 방에서는 지상파 등 여러 콘텐츠 제작 관계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한국의 드라마 제작 편수가 2019년 128편에서 2020년 110편으로 감소했다. 특히 월, 화 미니시리즈는 지상파에서 사라지는 변화가 생겨났다. 제작비는 올라가지만 광고 수익 등 성과는 낮아져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높은 제작비가 예상되는 드라마는, 현실적으로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지 못할 경우 제작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 일본의 콘텐츠 직접 수출이 감소한 이후 넷플릭스의 투자가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의 선결 조건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넷플릭스 드라마와 비 넷플릭스 드라마로 양극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함께 지상파와 종편 등의 드라마 품질이 매우 낮아지고 있다. TV광고 시장이 줄어들면서 지상파와 종편의 드라마들은 낮은 제작비 중심의 드라마로 편성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 환경을 선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저작권을 전부 소유하는 문제는 제작사들 입장에서 보면 추가 수익원을 막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현장의 제작회사 관계자들은 시즌1 성공 후 시즌 2를 제작사가 주도하여 수익 확장을 도모하고 싶어 하지만, 계약상 이미 소유의 전권이 넷플릭스로 넘어가버린 구조 문제를 토로한다. 넷플릭스가 충분한 웃돈을 건네준다고 하지만 제작사들에게 부가사업의 기회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는 지속적인 불만 사항일 수밖에 없다.
클럽하우스 토론방에 참가한 제작 관계자들은 디즈니플러스와 중국의 아이치이 등 새로운 제작 자본의 출현이 경쟁을 유발하면서 제작 환경에 변화의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음을 기대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 콘텐츠 제작사들과의 접촉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했다. 또 올 하반기에 애플TV플러스가 윤여정, 이민호 출연의 <파친고> 드라마를 선보일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SBS의 조선구마사 사태에서 보듯 외부의 자본이 이러한 제작사들의 수익력을 다각화시켜 줄 동아줄일 수는 있겠지만 ‘문화 침탈’ 이라는 또다른 이슈를 야기할 수 있다. (물론 조선구마사의 제작에 중국회사가 관여되어 있다는 주장은 아직 추론일 뿐, 사실관계 확인이 최종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았다)
하청 기지화는 지나친 패배적 시각
‘하청기지화’는 해묵은 논쟁 중 하나이다. 한국 제작사가 넷플릭스나 앞으로 다가올 글로벌 OTT의 오리지널 생산지로 종속되어 간다는 의견이다. 한국의 오리지널 드라마 회당 제작비가 25억 원~30억 원까지 상승한다고 해도 HBO가 제작한 <왕좌의 게임>의 회당 제작비 200억 원에 비하면 1/10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싼 가격으로 모든 저작권을 가져가는 셈이다. 하지만 과거의 ‘하청기지’의 의미는 소위 ‘브랜드가 없는’ 생산 활동이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나’는 내세울 게 없는 환경을 말한다. 그러나 콘텐츠는 다르다. 한국문화와 제작사, 출연 배우, 원천 스토리들이 총체적으로 이미지를 구성한다. <스위트홈>이 외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올리면 원천 웹툰도 해외로 진출이 가능해지는 식이다. 아울러 이런 스토리 자체를 보유한 ‘한국’에 대한 문화적 위상도 높아진다.
‘종속화’ 된다는 의미는 넷플릭스에 의존해 넷플릭스가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콘텐츠 제작 산업의 선진화, 대형화, 고품질화와 함께 플랫폼 전략이 동시에 구사되어야 한다. 토종 플랫폼이 글로벌 통로를 개척하지 못할 때 ‘종속성’을 논할 수 밖에는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 길은 남아있다.
토종 OTT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최근 글로벌 OTT에 대응하기 위한 토종 OTT들의 콘텐츠 제작 및 투자 확대가 연일 기사화 되고 있다.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위의 표를 연 단위로 쪼개보면 토종 OTT들의 총 제작 투자 비용이 6,000억 원 규모로 넷플릭스보다 높다. ‘쩐의 전쟁’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큰 투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투자는 대부분 OTT 경쟁을 위해 투입된다.
OTT를 위한 콘텐츠 수혈은 2가지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OTT들의 모기업인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국들을 위한 드라마의 제작 품질을 높이고 이를 OTT로 재활용하는 방안이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OTT를 위한 독자 오리지널 전략이다. 넷플릭스가 만들어준 투자의 기회를 CJ E&M이나 JTBC는 십분 활용해 자사 방송국용 드라마 지형을 넓히는데 활용했다. 최근 CJ E&M과 JTBC 연합체가 만들어낼 티빙을 향한 투자는 OTT 중심의 전략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티빙은 아래 표와 같이 드라마, 오락, 영화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오리지널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구체화했다.
티빙의 전략과 달리 웨이브는 2025년까지 쏟을 1조 원의 투자 비용이 지상파 본체와 공동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지상파는 글로벌 OTT 제휴의 문을 제한적으로 개방한 탓에 점차 드라마 영향력이 위축되고 있다. 지상파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명확히 판단해야 한다. 기획력이 점차 약화되고 제작 시스템의 장악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이런 문제의 귀결로 이해할 수 있다)
콘텐츠 소재의 다양성과 표현의 역동성이 높아지는 치열한 제작 경쟁환경에서 지상파와 웨이브의 돌파 전략은 돈의 크기 보다 시스템의 정비가 최우선 과제다.
토종 OTT들의 제작 투자 비용은 현재 가입자 규모로 투자 회수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 OTT 구독자 경쟁과 달리 토종 OTT 의 아시아 진출 위한 콘텐츠 협력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국내 플랫폼 연합은 기업 간의 헤게모니 이슈로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아시아 진출 연합’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현실적 과제다.
어떤 전략을 펼치더라도 콘텐츠 제작사들은 글로벌 OTT나 토종 OTT가 만들어낼 오리지널 경쟁의 판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국내 자본의 대규모 투입이 제작 산업의 글로벌 사업자 종속 우려를 해소시킬 수 있는 긍정적 낙수효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다만, 돈이라는 성배가 일부 넷플릭스와 제휴 경험이 있는 제작사나 대형화된 스튜디오들에 귀속될 우려도 존재한다.
서두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넷플릭스는 포식자인가?
제작 산업의 선진화와 종속화 모두를 불러오긴 했지만, 경쟁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는 고객의 만족이 기반이 된 필연적 결과이다. 수직적 먹이사슬만 남아 생태계 전체가 교란되고 있다면 ‘포식자’가 맞겠지만, 생태계는 늘 경쟁에 맞서 새로운 재편의 기회를 맞이한다. 토종 OTT들이 한국 콘텐츠 산업의 구원자가 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