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비켜라! 로쿠가 간다!
미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미디어 서비스가 있다. 커넥티드 TV (Connected TV) 플랫폼이 그것이다. TV에 인터넷을 연결해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OT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플랫폼이다. 크게는 스마트 TV에서 구글의 크롬캐스트까지 다양한 제품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에도 유사한 시도(CJ의 티빙 스틱, 딜라이브의 셋톱박스 등)가 있었지만 유의미한 숫자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커넥티드 TV 1위 플랫폼 ‘로쿠(ROKU)’
커넥티드 TV 플랫폼의 전 세계 1위는 ‘로쿠(Roku)’다. 2007년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 출시 직후부터 TV로 연결할 방법을 찾았다. ‘netflix TV’ 프로젝트로 불리는 사내 조직의 기술 성과가 ‘로쿠’ 탄생의 모태였다.
현재 로쿠는 셋톱박스와 스틱형 동글, 스마트 TV의 로쿠 플랫폼 등을 합쳐 5,500만 대의 TV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에서 인터넷과 연결된 TV를 1억 2,000만 대로 추산하고 있는데 로쿠의 점유가 40%가 넘는다. 그 뒤를 이어 아마존 파이어 TV, 구글 크롬캐스트, 애플 TV 등이 경쟁하고 있다.
당초 스트리밍 하드웨어로 출발한 로쿠는 이제 TV의 홈 엔터테인먼트 전체를 연결하고 통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2021년 1분기 로쿠는 전년 대비 79% 증가한 5억 7,700만 달러의 매출을 보고했다. 로쿠는 매출의 19%만이 하드웨어 판매에서 발생했고 나머지 81%가 플랫폼 매출이라고 자신들의 사업 가치를 강조했다. 플랫폼 매출은 스트리밍 OTT들의 입점료와 마케팅 수수료, 광고 수익, 콘텐츠 판매 수익이다.
차세대 케이블 TV를 꿈꾸는 로쿠
외형적인 사업 모델로만 보자면 로쿠는 케이블, IPTV와 매우 유사하다. 네트워크 이용료와 콘텐츠 기본 이용료를 제외하면 수익의 원천이 거의 같다. 미국에서 ‘차세대 케이블 TV’로 평가하는 이유다.
로쿠는 케이블과 IPTV가 방송국 채널들을 입점시켜 이들을 번호 순서대로 정렬하는 방식처럼, 미국에서 유통되는 OTT 플랫폼 대부분을 연결시켜준다. 그리고 2017년부터 로쿠 채널(The Roku Channel) 서비스를 론칭하며 광고 기반 무료 VOD(AVOD)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로쿠는 지난 1년 동안 오리지널 동영상 확보를 위해 퀴비(Quibi)를 인수했다. 스스로 오리지널을 제작하기 위해 제작사도 자신의 회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닐슨의 동영상 광고 사업부를 인수했다. 이 모든 움직임은 광고 사업 강화를 위한 사전 포석이다. 특히 닐슨의 사업부 인수는 자동 콘텐츠 인식 기술 (ACR : automatic content recognition)과 다이내믹 광고 삽입(DAI : dynamic ad insertion) 기술 확보 목적이었다. 고객들이 TV를 통해서 시청 중인 콘텐츠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ACR기술은 광고 타겟팅 및 고객의 영상 소비 측정을 진일보시켜준다. 향후 로쿠 플랫폼 안에 입점할 OTT들 그리고 아직 케이블에 머물고 있는 TV 채널들과 광고주들에게 로쿠의 분명한 위치를 알려주고 있는 것과 같다. 기존 TV광고주들이여 로쿠로 오라!
로쿠는 5,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들이 넷플릭스 등 OTT들과 로쿠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고객 축과 콘텐츠 축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 자신들의 미래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유투브 TV 앱을 제거하여 구글과 플랫폼 분쟁 중
이런 과정에서 최근 로쿠는 구글과 한판 전쟁에 나섰다. 지난 5월 로쿠는 구글의 ‘유튜브 TV (60여 개의 실시간 방송 채널들로 구성된 64.99불 별도의 앱. 한국에서 서비스되지 않는다)가 검색 결과를 조작하고 민감한 검색 데이터에 접근하기를 원한다고 비난하며 급기야 유튜브 TV 앱을 로쿠에서 제거했다.
구글은 로쿠의 TV 인터페이스 안에 유튜브 전용 검색 결과란을 만들어 유튜브 검색 결과를 좋은 위치에 배치해 줄 것을 희망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구글은 유튜브의 4K 영상 품질을 높이기 위해 AVI 코텍의 사양을 높이기 위해 로쿠의 하드웨어 변경을 요청했다고 한다.
로쿠는 구글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반 경쟁적’ ‘불공정’한 조건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유튜브 TV는 로쿠에서 제거되었고 구글은 유튜브 TV 이용자를 위해 유튜브 앱 안에 별도의 유튜브 TV 메뉴를 설치하여 로쿠 이용자들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유튜브 TV로 이동할 방법을 만들어 주는 수준에서 대응하고 있다. 전 세계 최고 기술 기업인 구글의 굴욕이 아닐 수 없다.
분쟁의 본질은 TV 데이터
유튜브 TV는 실시간 채널과 스포츠 이벤트 등을 제공하며 기존의 케이블 TV를 해지하는 ‘코드컷팅’ 족들을 위한 대안 서비스이다. 하지만 후발 사업자인 유튜브 TV는 유튜브의 명성에 비해 초라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300만명 수준의 구독자만을 확보한 상황이다. 그리고 유튜브 자체도 이미 TV를 통한 이용이 컴퓨터를 앞질렀다. 로쿠를 통하지 않고선 유튜브 TV가 TV와 연결될 주요 유통 지점을 잃게 된다.
로쿠는 앞서 언급한 ACR 기술을 활용, 다양한 스트리밍 앱들을 통해 고객들이 시청하는 콘텐츠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운동장에서 확보된 ‘TV 데이터’가 플랫폼 사업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TV의 다양한 요구는 로쿠의 ‘데이터 주도권’에 대항하고 간섭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 분쟁의 본질은 ‘데이터’이다.
구글이 성공시키지 못한 몇 가지 서비스 중 하나가 크롬캐스트이고 유튜브 TV이다. 이것들이 성공해야 TV 플랫폼으로 구글의 광고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다. 결국 이 속도에 발목이 잡혔다. 구글이 작은 플랫폼 스타트업에 맥을 못 추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돌아갔다.
스트리밍 이용 동선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의 TV를 통제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등으로 충분한 콘텐츠 생활이 가능해 짐으로써 이용자들은 기존의 케이블과 IPTV를 해지한다. 이왕이면 돈을 내지 않고 무료로 보고 싶은 채널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로쿠나 스마트 TV 등에 즐비하다. 그리고 최근 HBO MAX, 피콕 등 스트리밍 2부 리그에 속하는 OTT들이 광고가 포함된 상품을 출시하면서 선택의 옵션이 증가했다. 광고주들도 스트리밍 OTT가 중요한 광고 매체로 인식해 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은 기존 케이블과 IPTV의 코드커팅과 비례하여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로쿠는 유료, 무료로 분산된 소비 행태를 유리창 뒤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며 세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로쿠는 커넥티드 TV의 연결자이자, 스스로 콘텐츠를 제공함은 물론 이 연결 안에 광고 사업자로도 나서고자 한다. 닐슨의 분석에 의하면 고객들이 스트리밍 콘텐츠를 한편 선택하는데 검색에서부터 시청까지 7분 이상이 소요된다고 했다. 로쿠는 고객들의 이용 동선을 장악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으로 스트리밍 이용이 가능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이렇게 ‘룰’을 정한 만큼 빅 테크 기업 구글과의 협상도 걷어찬 것이다.
한국에서 로쿠 모델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
그런데 왜 한국에는 ‘로쿠’ 모델이 성공하지 못할까? 파격적인 가격으로 TV 연결 하드웨어(셋톱박스나 스틱형 동글 등)를 유통시키면 한국형 로쿠가 탄생할 수 있을까?
로쿠는 스마트 TV가 나오기 전부터 TV 연결 기술에 집중했다. 넷플릭스가 이를 적극 활용하면서 확산을 도왔다. 드라마, 영화, 스포츠 등 분야별 OTT들이 증가하면서 로쿠와 악수했다. 셋톱박스, 동글형 스틱, 스마트 TV 제휴 등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병행하여 기술 유연성을 발휘했다.
반면 한국은 TV 연결 하드웨어에 올라탈 OTT 다양성이 부족했다. 싼 값에 TV 연결 하드웨어를 구매해도 웨이브, 티빙을 보기 위해서는 TV상품에 돈을 더 내야 한다. 그리고 고객들은 하드웨어를 구매해서 TV에 연결해야 하는 번거로운 수고를 원치 않았다. 로쿠 형 제품의 수요보다 스마트 TV의 판매 (한 해에 백만 대 이상)가 더 빨랐다.
차세대 TV 플랫폼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로쿠의 꿈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OTT의 확산을 활용한 로쿠의 영향력 확대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로쿠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은 후방에 가진 자산이 다소 약하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로쿠의 꿈은 어쩌면 큰 놈이 잡아먹으면서 더 빨리 이루어질 수도 있다. 로쿠에 굴욕을 겪고 있는 구글 또는 스마트 TV 진영, 혹은 아마존 등 인수자 후보는 많다.